인천의 포크, 동요집 #1 시작
- Jeon Yoodong
- 2019년 8월 29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19년 9월 8일
인천의 포크 트릴로지! 마지막 3부작, 동요집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동요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생각나는 동요들을 흥얼거려 보았다.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 엄마가 섬그늘에, 기찻길 옆 오막살이,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산 건너 물 건너 가는 길,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생각나는 부분들을 계속 부르고 다시 생각나는 것들은 반복해서 불렀다. 동요집에 대한 주제나 어떤 의미를 찾기 위한 행위는 아니었다. 한 번 시작하니 몸 속 깊이 체득된 듯이 자연스럽게 짧은 구간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그리고 반복 속에서 점점 뚜렷해지는 계산을 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 동요들이 나에게 던져주는 어떤 메시지를 받고 있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것들과 사라져가는 것들이 있음을. 볼 수 없는 풍경들이 있고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쉽게 와닿지 않을 것들이 숨어 있었다. 아마 동요는 상실을 대비한 아름다운 기록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상실되어 가는 것들의 감정이 어떨지 궁금했다. 말그대로 상실을 당한 이의 감정이 아니라 상실되는 또는 되어지는 주체의 감정과 그대로의 가치 말이다.
잃어가는 관계보다 사라지는 관계가 더 많다는 것을 많은 상실 뒤에 알게 되었다. 그리고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당연히 부재를 의미했다. 당연한 것이었을텐데 동요를 부르며 분명하게 알게됐다. 슬프고 안타깝지만 그렇기에 분명히 아름다웠다. 젊음을 기억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모르는 것을 마치 아는 것처럼 노래한다는 것이 얼마나 건방진 행위인지 안다. 그렇기에 나는 노래 안에서의 화자에 나와 우리를 대입한다. 100명 중 한 30명은 나와 같기를 바라며. 그리고 우리의 모습과 입장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것도 혹여 큰 잘못을 저지르진 않을까 걱정하며 곡을 써왔다. 이번에도 이런 걱정들과 쓸데없는 생각(너무 깊이 들어가기 때문에)들을 안고 곡을 쓰기로 했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따오기를 2008년 중국으로부터 따오기를 데려와(기증받았다 하지만 물건 같아서 맞지 않겠지만 표현을 바꾼다.) 복원사업을 통해 개체수를 늘리고 야생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훈련시켰다. 지금은 야생 방사에 성공하여 적응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곁에서 자취를 감추고 떠난 따오기가 다시 돌아왔다면 더욱 기뻤을 것이다.
나는 "상실"이 아니라 "잠정적인 부재"이기를 바랐다. 그 상실이 훗날 치료될 수 있는 "재회"이기를 바랐다.
자연으로 날개를 편 따오기를 보며 노래를 불렀다. "보일 듯이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따옥 따옥 따옥 소리 처량한 소리."(여태 청량한 소리로 알고 있었던 것은 함정)
상실이 재회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떠나는 이의 약속을 담고 싶었다.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어쩌면 따뜻한 만남을 기다릴 수 있도록 말이다. 이번 동요집에서 자연계를 맡아달라는 권형님의 말을 떠나서 기존에 있던 따오기의 노래를 다른 풍경으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에 눈이 가고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따오기 먼 훗날 돌아올 때까지 모두 그대로 두실거죠? 쌓여질 많은 이야기는 그 때 꼭 나누기로 해요 돌아오면 다 자란 나무 아래서 짐도 풀지 않고 고된 몸을 이끌고 제일 먼저 기다려준 친구들을 위해 노래할게요
서울에서 지내던 중 가지도 않던 성당 미사를 보러갔다. 끝이 날 때즘 비가 쏟아졌다. 모두들 집에 있는 가족들에게 전화하여 우산을 챙겨 성당을 떠났다. 혼자 남겨진 나는 기다리다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빗발을 해치며 집으로 돌아왔다.
서울에서 활동하던 도중 할머니와 통화를 했다. 할머니께서는 가까이 있지 않으니 많이 걱정하셨다.
"다시 내려오면 안되겠니?"
죄송하지만 지금은 이대로 내려갈 수 없다고 말씀드렸다.
나의 부재는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이 노래로 남겨진 이에게는 제자리로 다시 되돌아올 것이라고, 떠나는 이에게는 다시 되돌아갈 것이라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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